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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3000억 완판 미술품 경매사 손이천

by 로토루아8 2018.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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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 최고의 가치를 입히는 경매 현장의 지휘자~ 미술품 경매사 손이천

한국 미술품 경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개척자라고 국내 최초 100% 낙찰률 낙찰 총액 3000억원

2010년 경매사로 데뷔후 9년간 쌓은 기록이라고하네요.

당시 국내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함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미술품 경매의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미술품 경매의 진실

실제로 자주 받는 오해 중 하나인데 미술품 경매사는 안타깝게도 일반직장인처럼 월급신세라고함

수십억 상당의 미술품이 판매되더라도 회사의 매출은 중개수수료고

만약 34억원 작품 거래가 성사됐다면 입사이후 가장 비싼 고기 회식을 한다고...ㅋㅋ 소고기파티

성과를 축하하는 회식자리로 만족해야한다고함

과거 경매 번호판이 없을때 손을 든다면 응찰 신호

그래서 머리를 만지거나 코를 만지면 제가 살래요~ 이런 의미라고

ㅋㅋ 그래서 코를 잘못만져서 울면서 지갑을 열수도 있다고...


종이재질만 봐도 오랜 세월이 느껴지죠

조선시대 진경산소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작품임

아마 이거 오늘도 보셨을거라고...ㅋㅋ

원작은 익숙하지 않은데 이렇게 보니 넘나 친근함..ㅋㅋ

천원 지폐 앞면의 주인공은?

그림을 그린 겸재 정선이 아니라 앞면에 퇴계 이황이 있는 이유는 ? 두사람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퇴계 이황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도산서원의 전신으로 배경은 퇴계 이황이 제자를 가르치던 도산서당이에요.

정선의 계상정거도 포함 글과 그림을 모아 묶은 서화첩이에요.

총 16면으로 구성된 서화첩으로 퇴우이선생진적

퇴계이황의 회암서절요서와 우암 송시열의 발문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4폭 이 서화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처음 제작과정은 물론이고

작품을 본 사람들의 소감 및 전승과정이 기록되어있음

책 한권에 담긴 조선 예술사~

1975년 보물 585호 지정 경매 낙찰가는 얼마였을까요?

당시 경매 시작가는 26억원이었고 호가당 5천만원 상승함

웬만한 중형차 1대값이죠. 현장, 전화 서면 응찰까지..

미술시장 품격을 높여준 경매였음

당시 미술품 경매가 3위인데 국내 고미술품 최고가 경신함 최근 경매에 등장한게 대동여지도인데

약 3층 높이로 세워두기는 불가능함 펼친 상태로 눕혀서 전시했었다고하네요.

프리뷰 전시 후 바로 철거함 오랜 세월 전승된 보물인 만큼 빛과 습도 변화로 인한 손상이 우려되

아쉽지만 딱 하루만 원본 전시하고 이후엔 복사본으로 대체했다고하네요.

조선시대 지도는 대부분이 흑백인데 

한장의 지도가 아닌 2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있음 1첩씩 층층이 연결되어 대동여지도가 완성됨

대동여지도 목판이 크기가 43x 32cm 목판 1장이 지도 4면 남북 120리 동서 160리

앞뒤 양면에 지리정보가 가득함 하나의 목판본에서 나오는 지도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해 한성부지도와 도성도 를 별도루 추가해 놓음

요즘으로 보면 수도권지도와 서울 시내 지도를 구분함

세월이 흘러 바래질 수도 있지만 첫 제작 때부터 일부러 연하게 채색함

짙게 표현된다면 눈에 피로도가 높아지기 때문임

선조들의 노력뿐 아니라 지혜까지 엿볼수 있는 고지도의 백미인 대동여지도~

작품 구매자

경매의 가장 큰 특징이 사는 사람이 가격을 결정해요.

보통 만드는 사람이 가격을 결정하지만 미술 경매에서만 해당되는 특별한 거래 방식이죠

누구든지 작품을 원한다면 자유롭게 가격 제시가 가능함


낙찰되는 순간 경매사가 망치로 쾅쾅!

국내 경매 회사 판매 수수료가 16.5%입니다.

미술품 경매 입문자들은  주목해주세요.

최종 낙찰가 2000만원이면 낙찰 수수료는 330만원이에요.

예산이 2000만원이라면 낙찰가 1700만원 이하여야 거래가 가능해요.

사진에 있는 경성미술구락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우리나라의 고미술품을 도굴했떤 일본인들

불법밀거래 시장이 활성화됐고  이를 제재하기 위해 설립된 일제 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로

미술품 경매 및 고미술상 친목 도모 역할

경매를 통해 문화재를 사 모은 사람!!

1938년에 세운 최초 근대적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

1940년대에 발견한 발견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던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이유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주장이 고대 글자 모방설, 화장실 창살모양의 기원설등

한글을 폄하하고 왜곡하기 시작함.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으로 모든 가설이 쏙 들어감

안동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간송 전형필은  단박에 구입을 함

당시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격이 서울의 기와집 한채 값이 천원으로 오늘날 약 10억원정도

하지만 실제 구매 가격은? 무려 11000원에 구매를 함

현재로 따지면 약 110억원

더 비싸게 산 이유는? 한글의 원리에 대해 쓴 세상에 하나뿐인 책으로

훈민정음같은 보물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

소중한 보물인 만큼 중개인에게도 융숭한 대접을 함

덕분에 많은 학자들이 체계적으로 한글을 연구하게 됐고

간송 미술관의 옛 이름은 보화각으로 빛나는 보물을 모아두는 집이었다고해요.

문화재를 보호하고 민족정신을 지킨 간송 전형필

그런데 6.25전쟁이 발발하고 위기에 처한 미술관 작품들 중요한 유물만 챙긴채 떠난 피난길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만큼은 품안에 쏙~

간송 전형필 그는 누구인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애정으로 문화재를 지킨 간송 전형필의 성장 배경은?

조선시대 최고 부잣집 태생으로 14살 이른 나이에 갑자기 연달아 세상을 떠난 가족들

조선시대 백만장자였음 많은 재산으로 개인의 이익이 아닌 문화로서 나라를 살리자

문화 보국의 정신으로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고자 전 재산을 바쳐 수집을 함

국보와 보물들로 가득한 간송미술관의 작품들..

이는 곧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에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숨결이 담긴 옥중 글씨 그중 명심보감 글귀를 적은 행서족자가

7억 3천만원에 낙찰됨

안중근 기념관에도 복사본만 존재하는데 진품 소장자였던 일본인의 위탁 의뢰로

한국에 돌려줘야할 귀한 작품이다~

국내 최초 공개된 진품이 있는데

당시 흔치 않았던 색색 종이로 값비싼 귀한 색지가 희소가치를 더해

5천만원에 낙찰됐다고하네요. 평지 8통과 봉투 6매로 구성되어있음

명성황후 편지엔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구한말 한글의 언어학적 연구를 위한 사료이자 명성황후 개인의 삶과 정치적 상황을 볼수 있는 자료에요.

작품의 높은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

1. 희소성이 높은 작품

2. 미술작품으로서의 예술성~

3. 작가의 미술사적 위상~

꾸준히 화업을 이어왔는지도 중요해요. 중도 포기했다면 저평가 받겠지만 평생 한길을 걸었다면 가치를 인정

또다른 흥미로운 요인이 있는데 작품 소장자가 누구인가.. 작품이력도 중요하다고

전두환가 거실에 걸렸던 작품이에요. 

서양화가 이대원 화백의 농원이라는 작품은 실제 경매에 출품됨 위탁자는 누구였을까요?

검찰의 작품 압수로인한 640여점으로 위탁자는 대한민국 검찰임

이 많은 걸 어떻게 팔아야 할까?

단! 해외 경매가 가능한 회사이어야함

국내 대표 경매 회사 2곳의 공개경쟁

뉴스로 접한 미술품 압수 현장 청동 불상부터 유명 작가의 작품까지~

하지만 막상꺼내보니 원작 아닌 판화에 모조품까지 잔뜩이었다고함

국민화가인 박수근 작품의 경우 A4 용지정도 작은크기인데 10억에서 20억한다고

알짜배기 작품 하나면 충분함~ 전재국 컬렉션의 경우 특정 작가의 시대별 작품이 총집합인데

시장성 뛰어난 작품보다는 예술적 의의가 높은 미술품이 다수에요. 압수 물품 대부분은 장남 전재국이 수집

대통령 일가가 소장했던 특별함~ 낙찰총액 72억원으로 최초 100% 낙찰

경매 수익금 국고 환수 완료함

미술시장의 3D 법칙이 있어요.

Death  죽음

유명 미술품 컬렉터가 죽었을 때 가족을 통해 작품이 보전되기도 하지만 취향이 다른 경우 처리하죠.

경매 회사 직원들이 아침에 확인하는 것?

유명인의 사망소식은 컬렉터의 가정사에 민감해요.

마지막은 Default 파산

국내 경매시장에서의 3D는 전재국 컬렉션이 대표적이에요.

작품을 그린 화가는?


남자 모나리자라는 별명도 있다고함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예수의 초상화로

살바토르 문디임 약 5000억원에 낙찰됐다고함

작품이 고가에 낙찰된 이유는? 현존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이 20점 내외로 추정되는데

거래될 기회조차 없는 거장의 작품임 좋은 작품은 미술관 박물관에 보관되거나

세계적인 갑부가 이미 소장중이기에.. 출품 소식에 세계 미술 시장이 들썩했다고..

살바토르 문디가 세운 기록들이 

각 나라별로 환율이 표시됨~

낙찰가가 4억달러고 약 4500억원임

미술품 실제 가격이 약 5000억원인 이유는? 수수료만 약 800억원임

그렇다면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규모는? 경매 수익이 낮았던 시절

2007년 급성장을 이룬 경매시장 경쟁 체제에 돌입한 경매회사는 계속되는 경매 신기록 쏟아내기로

3년만에 약 20배 성장함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이 다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김환기 화백의 등장

지금은 환기시대로 그가 세운 경이로운 기록이

하루에 16시간 이상 작업을 하는데 김환기의 뉴욕시대를 주목하라!

김환기 화백의 작품엔 무제가 많다? 대부분 작품명이 없는 추상화임

평소와 다르게 특별히 제목을 붙인 작품이 있는데 사라보다 큰 대형작품으로

당시 낙찰 최고가 경신함


일변 환기 블루~

푸른색을 즐겨쓰던 김환기 화백은 기존 작품과는 다른 붉은 채색임

70억원으로 경매 시작 최종 낙찰가는 약 85억 3천만원임 경매 수수료가 약 14억

우리나라 경매 역사 최초로 100억대 미술 작품도 탄생했다고함

80%를 차지하고 있는 김환기 작품

매년 미술품 최고가를 경신함 국내 미술 경매 역사상 처음이라고함

상당수가 1970년대 이후의 작품인데 대부분 제목이 없음

김환기 화백의 뉴옥시대 전면점화

이것만 기억하세요~

윤상씨랑 닮았네용...ㅋㅋ 잠자는 시간빼고 매일 하루 16시간 작품에 몰두

주로 성인 키를 넘기는 대작들임 온종일 작품에 몰두해도 평균 한달에 한 작품 완성

1970년 이후부터 작업한 대형 전면점화

그림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이유는

본명은 변동림인 김향안 여사

결혼할 당시 두 사람 모두 재혼인데 김향안 여사의 첫번째 남편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결혼한지 반년도 안돼 요절한 첫번째 남편

세기의 두 천재가 사랑한 김향안 여서

그들을 사로잡은 그녀의 매력은 무엇일까? 하나의 작품세계에 안주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이 되어준 뮤즈~ 홀연히 떠난 파리 유학길도 아내의 과감한 추진력 덕분이라고해요.

남편의 예술혼을 환기시킨 완벽한 조력자

변동림에서 김향안으로 개명한 이유는 결혼을 극심하게 반대했던 가족들때문임

좋은 집안의 여식으로 자라 수필가로 활동하던 변동림

남편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함

김환기 화백의 어릴적 아호인 향안으로 개명을 함


" 손장난의 재미에 빠지지 않고는 참다운 작가가 될수 없다."

본인의 여러 경험과 고민들을 작품에 녹여내기 위해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끊임없이 드로잉

그결과물로 탄생한 추상 미술 작품들~

김환기 재단과 미술관 설립하고 남편의 그림을 알리는데 평생을 몰두함

그가 죽은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미술 시장에 김환기 시대를 열어준 것은 남편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을 가진 아내의 노력 덕분임

점 1개를 6번  1000000개를 해서 만든 작품으로

하루에 16시간 한달을 꼬박해야 완성함 1963년 미국으로 떠난 뒤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11년 뒤인 1974년 뉴욕에서 작고한것으로 해외여행조차 쉽지 않았을 당시에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무수한 점으로 승화시킨 김환기 화백

지금과는 달리 주목받지 못했던 과거 뉴욕에 온지 약 2년째 되던 날의 일기임

196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석했는데 세계의 미술을 접하며 느낀 전율

저명한 대학의 교수직을 역임 이미 한국에서는 성공한 예술인인데 국제 미술전 이후

예술적 충격을 받은 뒤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뉴욕행을 결심함

생활고에 시달리던 뉴욕시절에 김환기 화백의 고뇌가 담긴 일기

고국에 두고온 가족들.. 보고싶은 딸의 얼굴..

수만개의 점을 바라보며 타국에서 힘들었을 아버지가 떠오른 것

1970년 4월 16일 166번째로 완성한 작품이 1970년 제 1회 한국미술대상전 출품작으로 대상을 수상했어요

친구 김광섭 시인의 작품 저녁에 구절을 인용했는데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두움 속으로 사라진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에요.

훗날 국보로 지정돼도 손색없을 훌륭한 작품이에요.

김환기 화백과 더불어 한국 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단색화가들

김환기 화백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윤형근 화백

서울대 미대 입학시험장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 하필이면 난생처음 늦잠을 잔 윤형근 화백

지각 위기에 날씨까지 소나기가 옴 비맞은 생쥐꼴로 시험에 응시했는데

그러나 6.25 전쟁 발발로 본의 아니게 보도연맹에 연류되었고 입학이 거부됨

다시 문을 두드린 곳이 홍익대 미대임

홍대 미대 입학에 큰 조력자 역할 윤형근 화백에게 김환기 화백이란..

스승이자 본인이 넘어야 할 산임 또 다른 각별한 인연...?! 사제지간에서 가족이 되었다고하네요.

너무 존경한 나머지 평소 아버지라 칭함

획을 긋는다.!!

추사 김정희에게 영감을 받았던 윤형근 화백

하늘을 뜻하는 청색과 땅의 색 암갈색을 섞어서 사용함


세계가 주목하는 단색화, 단색화 열풍의 주역들~

물감에 고령토를 섞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그리고 대중에게 높은 관심을 받으며

박서보 화백은 한국 현대 미술의 살아있는 역사로

300만원에서 15억으로 30년만에 500배 오른 그림 값

아들이 한글 연습하는 것을 보고 고안해낸 묘법으로

40년째 캔버스대신 마대를 사용

한국 단색화의 자랑이 된 접합 시리즈~

수십년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거장들~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매회사에서 진행중이라고하네요.

대한민국 단색화전 경매회사에서 전시는 극히 드문 일인데 정말 중요하거나 조망할 작가에 한해서만 해줌

뉴욕 홍콩에 이어 유럽에서도 러브콜이 계속되고 있다고하네요.

그야말로 K아트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단색화~

모노크롬

한가지 색이나 같은 계열의 색조를 사용한 그림이에요.

한국의 모노크롬이 아닌 단색화!!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해요.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고 있는 단색화

미술품을 접하는 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

시대적 상황과 삶의 고민을 담고 있는 미술품은 여전이 미술이 어렵고 나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하나요?

이제는 미술을 일상처럼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출처: otvN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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