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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속 정보.

차이나는 클라스 28회 - 광주의 진실 <황석영 II>2

by 로토루아8 2017.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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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6 - [티비속 정보.] - 차이나는 클라스 28회 - 광주의 진실 <황석영 II>1





전국으로 퍼져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책이 출판되자마자 발칵 뒤집힌 집 집안 곳곳을 경찰이 수색하고 갔다고해요

마당 한쪽에 창고가 있었는데 창고 지붕이 슬레이트인데

지붕아래에 숨겨놨다고해요



그렇지만 자수했다고해요.

열흘간 도망다니다가 자수한 출판사 대표.

출간 한 달 뒤 책이 퍼진 것을 확인한 후 자수했다고함.




글재주 있으면 글로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하게 하는것이

내 스스로가 해야할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힘들었었다고해요





그 책이 달갑지 않았던 정부의 강압적 제안

감옥이냐 독일이냐 해서 어쩔 수 없이 택한 독일행.




1985년 정신없이 도착한 독일  생애처음으로 서구사회를 보게 된 1985년





어느날 황석영을 찾아온 한국인 교수가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른채 도착한 곳이 작곡가 윤이상의 집이었다고해요



한국음악과 서양악기의 결합을 시도하며 동서양을 잇는 중게자로 세계음악사의 새 페이지를 연 작곡가라는 평을 들은 천재 음악가라고해요.


20세기 5대 대표 음악가라고

간첩이라는 오해를 받고 잇었는데





조선국립교향악단은 1946년 창단된 북한의 교향악단. 폴란드. 불가리아. 일본 등 해외공연을 포함해 1만여 회가 넘는 공연으로 김일성 훈장을 받은 대표 교향악단이라고해요.



커튼콜 박수가 쏟아지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게 보통인데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칼같이 일동 기립을 해서




그들이 각자 떨어진 개인이라는 걸 연습해서 보여줘야 하는게

그런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고해요.



인간애로 북을 바라봤던 윤이상.

그것이 예술가의 상식이고 자유의지라고




우물 안에 갇힌 듯 모멸감을 느꼈던 순간이

외국에서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한반도의 현실





외국에서 사상의 자유라는 벽에 부딪한 황석영


일본 간사이 지역에 동포 공연회를 갔을 때




남부 조국만 운명이고 북부 조국에 생각이 없다면

한정된 운명에 얽매진 채로 이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


라는 노인의 질문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고해요.

분단된 조국이 너의 운명이냐




작가라면 그 운명을 타개하면서 나가줘야 하는게  아닐까..

거기서 북한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자아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말 못하고 숨기면 굴육감이 들고

그런 고민들을 안은 채 귀국을 했다고해요.






그리고 돌아왔을때 6월 항쟁이 일어났는데

전두환의 호헌 조치 철폐 및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한 민주화 시위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했는데

자주, 평화원칙에 따라 북과의 교류. 문화개방. 상호협력등 

실천방안을 제시한 발표로 일명 7.7 선언으로 불립니다.



민간 교류로 먼저 저지르자!

북한 가는데 아무것도 아닌거로 하자!






설마 목사와 작가를 간첩으로 못만들잖아?




불고지죄라고해서 반국가활동을 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서도

수사기관. 정보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죄임.









물귀신 작전에 제대로 걸린 김상현 밥먹자고하고선 




물귀신 작전엔 물귀신으로 한명 더 데리고옴.



여야 정치인들의 도움을 받게 된 황석영.





여러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출국해



해서 평양으로 갔다고해요.




방북목적은 방북기행문써서 대중화하겟다라는 생각이었다고해요.

비공개 방문이라 환영 인사 없이 조촐하게 도착



어디 영화에 출연한 배우같은 기분이었다고해요.




북한 초대소의 손님이었지만 개별적으로 행동한 적은 없다고해용.

방북기간동안 억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북한에서의 첫날밤 자신이 살던 우이동하고 똑같았다고




비로소 아침에 둘러본 북한의 풍경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민감한 이름인지 우리한테는

긍데 만나본 결과 추장같은 느낌이었다고해요.


기억력도 좋고 그래서 자기가 지나왔던 곳 일반 인민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어

부족장처럼 친근하고 편한 첫인상의 김일성

적에대해서 이야기하거나 나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이 싹 변하는데

수십년동안 권력투쟁을 하면서 




처음에 만날 때는 북한 작가와 함께 초청했는데

호위총국이란곳으로 남한의 경호실같은곳에



이렇게 하라고 알려줬는데 문열고 들어가는 순간 다 잊어먹고

밥먹으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관절이라는 각 단체들의 자유 재량권. 민주주의 원칙인데

함경도 어디 두메산골의 작은 일들이 다 올로오는데

당 중앙으로 올라오는데 그러면 과부하가 일어난다고

재량권. 자유가 없는 북한이 그렇다고하쟈




시간이 지나면서 생겨난 북에 대한 편향

북한 체제가 구축한 물샐틈없는 통제로 너무 절망적이라고



결국 돌아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고해요.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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