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던 서양미술 명작의 세계.
아는만큼 보이는 그림 이야기 2탄, 미술 틀을 깨다. 미술의 매력을 일깨워준 뜻깊었던 지난 수업...ㅠㅠ
앗 저는 요거 못봤더라고요.
미술은 삶의 본질이자 우리의 본성입니다.
대게 국내 박물관 1층에 전시된 작품이죠.
선사시대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죠. 자주 봤던 만큼 자연스럽게 건너뛰게 됐던 작품임.
자세히 보면 생각보다 정교해요.
토기를 만들때와 장식을 새길때 소요시간이 더 긴 것은?
장식이죠. 그런데 신석기 토기의 기능은 뭔가요? 그릇이죠.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편견. 부차적인 장식보다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함.
실제 빗살무늬 토기의 제작과정을 유추해보면 무늬를 새기는데 더욱더 많은 시간을 할애.
보기에따라 빗살무늬 토기의 다양한 무늬들은 현대 미술에서도 찾아볼수 있는 표현방법.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 미술품은 빗살무늬 토기에요.
우리의 선사시대를 보여주는 지표에요. 빗살무늬토기.
오늘 강연 주제와 연결된 근본적인 질문.
" 미술은 인간의 삶에 있어 부수적인 걸까?"
" 그런데도 원시인들이 미술에 공을 들인 이유는 뭘까?"
" 원시인들이 새긴 무늬에 담긴 의미는 뭘까?"
그들의 사고와 경험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빗살무늬.
빗살무늬 토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원시미술 작품에서 볼수 있는 특징.
박물관에서 볼수 있는 또다른 원시 미술품은?
주먹도끼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규격화된 도구.
주먹도끼는 인류가 180만 년 전부터 애용한 연장이에요. 그런데 주먹도끼를 자세히 살펴보면
흉내내기 어려울 만큼 고난도의 작품임.
주먹도끼가 미술품인 이유는
그런데 간단한 연장임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다해 주먹도끼를 만든 이유는?
멋을 위해 더욱더 날카롭게 만들었다는 학계의 해석은 진화 생물학자 머렉 콘의 이론임.
섹시한 주먹도끼 이론.
주먹도끼를 잘 만드는 것이 본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주장함.
과시용으로 거대한 크기의 주먹도끼도 발견됨.
인류의 삶과 세계관이 담긴 타임캡슐.
약 4만년 전 생긴 놀라운 변화가 동굴벽화의 등장임
미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좀더 살펴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바로 라코스 동굴벽화
강아지가 들어간 구멍에 따라 들어갔다가 동굴을 발견함
이게바로 라스코 동굴이에요.
낙서로 오해하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웅장한 라코스 동굴벽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동굴벽화에요. 황소의방.
밑에 사람 엄청 쪼만하죵..ㅋㅋ 정말 이게 옛날에 그린그림이라니..엄청나더라고요.
스페인 투우의 조상격인 오록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 7천년전에 그려진 그림이에요.
제작 방식 역시 흥미로운데
속이 빈 동물 뼈를 활용해 입에 물고있던 물감을 불어서 벽에 색을 입혔던 구석기 화가들
인류 초창기의 그림인 만큼, 그림 재료도 원시적입니다.
바로 흙 다양한 색의 돌 등을 활용.
만 3천년전, 산사태로 동굴 입구가 막히면서 습도와 온도의 영향없이 동굴이 봉쇄된 채 유지될수 있었던 라코스 동굴벽화
때문에 발견 당시, 구석기 시대로 다시 빨려들어간것처럼 고스란히 남겨진 구석기 화가의 그림을 볼수 있었던 것.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작은 램프에 동물 기름과 심지를 넣고 촛불처럼 사용한 그릇이라고해요.
더 재밌는 것은 저기 마크가 있는데 아마도 소유자를 표시하기 위한 표식을 남겨둔 것으로 추정.
1만 7천년전 식량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시 벽화를 그린 이유는 뭘까요?
동굴벽화를 처음 봤을때 흔히 하는 생각이 동굴에 살면서 인테리어로 벽화를 그렸을 것!
그런데 우리가 유적지에 가서 보게되면
사람이 살지 않고 동굴에서도 깊고 험한 길을 지나서 발견된 벽화.
이런 의미에서 벽화는 당시 원주민들의 주술적 행위의 결과물로 해석.
동물을 잘 잡을수 잇게 해달라는 것과 또한 그들이 겪은 환경과 역사가 담긴 기록물이라는 해석도 존재해요.
1940년 발견 직후 유럽의 인기 관광지가 된 라스코 동굴.
그러면서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등 봉쇄된 동굴의 문을 개방하자 급격히 훼손되기 시작함
개방후 불과 몇십년 사이 훼손된 선사시대 보물.
프랑스 정부는 결국 1963년 라스코 동굴 폐쇄 결정. 엄격한 허가절차를 거쳐 하루에 딱 1명의 관계자만 잠시 출입 가능.
1983년 인근에 라스코2를 개장함.
라스코 벽화를 90% 재현한 인공동굴, 라스코2
지역화가를 모집해 당시와 동일한 재료로 그림을 완성.
라스코 동굴벽화의 핵심적인 부분만 선별해서 재현했다고해요.
실제 라스코 동굴을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라스코2
프랑스에 동굴벽화가 많은 이유는 많은 지역에 석회암 지대가 형성돼 자연 동굴이 발달되어있기때문이에요.
한국도 동굴의 나라거든요.
언젠가는 한반도에서도 동굴 벽화가 발견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동굴벽화는 없어요.
동굴벽화에 필적할만한 한국의 유적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임
1971년 발견된 선사시대 암각화로
태화강 상류 암벽에 새겨진 그림들임.
날카로운 도구로 바위를 쪼아서 새긴 그림이에요.
현대미술에 영감을 준 원시 미술의 특징.
1. 장소성.
현대 미술의 중요한 키워드, 장소성
장소의 상태나 특징을 반영해 작품을 완성.
완성된 작품을 전시 공간에 거는 것이 아닌 작업할 때부터전시 공간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
현대 미술의 장소성
약간의 변주로 삭막한 도시 생활에 쉼표를 선물한 작품임
장소가 지닌 특징을 작품에 녹인 현대 미술의 장소성.
광고기획자, 이제석의 공익광고.
장소성을 이용해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임.
원시 미술의 장소성은 어떨가요?
평평한 도화지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암반.
단순히 종이에 동물을 그린 2차원의 그림과 달리 울통불통한 벽에 맞춰 동물의 움직임을 표현함
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활용해 동물의 모습을 극대화
원시 동굴의 장소성이 돋보이는 또 다른 벽화.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
튀어나온 지형에 맞춰 소를 그림
3차원의 그림이에요.
울퉁불통한 암반에서 자신들이 표현할 대상을 떠올렸던 선사시대 화가들.
단순한 기록이 아닌, 환경에 스며드는 작품을 완성.
이런 점에서 현대 미술의 화두인 장소성의 선구자이자, 뛰어난 예술가에요.
주변 환경을 이용해 자기 작품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장소성을 통해 교감하는 선사시대 화가와 현대 화가들
우리가 원시 미술의 매력중 하나가 장송성이라고 했는데
원시미술의 특징이. 2 정교한 묘사에요.
두 소가 교차하는 모습을 그린거에요.
15세기에 들어서야 처음 시도된 서양의 원근법.
1만 7천년전 이미 원근법의 원리를 알고 있었던 선사시대 화가들.
이거만 봐도 사슴들이 강을 건너는거 같죠?
게다가 바위로 강의 물결을 표현함.
현대 미술을 뛰어넘는 수준의 작품임.
수렵 생활을 하며 동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원시인들.
그게 바로 정밀한 묘사를 할수 있었던 이유는 피카소도 이 동굴에 갔습니다.
실제 동굴벽화에서영감을 얻은 피카소는 1945년부터\
쉽게 납득되지 않는 미술과 생존의 연결고리.
우리와 똑같이 생긴 외게인을 만났다면?
하지만 우리와 달랐던 거죠.
호모사피엔스의 등장으로 사라진 네안데르탈인
다부진 근육으로 맹수를 잡던 타고난 사냥꾼.
호모사피엔스와 지능수준도 비슷한 종이 동시에 존재.
인류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있을 때 네안데르탈인들은 멸종하고 있었어요.
두종이 함께 번성했던 시기가 마지막 빙하기의 후기인데
바늘을 발명한 호모사피엔스는 추위를 극복해 생존했고 네안데르탈인은 추워서 없어졌다고..
갑작스러운 빙하기에 오모사피엔스처럼 옷을 가공하지 못햇던 네안데르탈인은 추위를 극복하지 못해 멸종된건 진실이에요.
그런데 최근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을 보면
사진처럼 정교한 호모사피엔스 그림.
호모사피엔스는 자신의 생각을 자세하게 기록한게 바로 생존지침이 아니었을런지?
언어를 통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처럼 문자대신 그들의 삶과 경험을 정교한 그림으로 남긴 호모사피엔스.
눈으로보고, 인지한 것을 손으로 표현하고 공유
" 지식과 체험이 다음 세대로 연결"
인류 지식 혁명의 첫단추가 된 호모사피엔스의 그림!!
이를 통해 인류 인지 혁명의 연쇄반응이 시작합니다.
인간의 소통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인류의 생존비결인 미술, 그림으로 소통하고 , 후대에 남기며 문명 세계로 발돋움한 인류.
지금부터 인간이 문명 세계로 발을 디디며 남기는 미술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고대 문명의 총아인 이집트 미술.
이집트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집트인들이 꿈꿨던 세계관이자 이집트인들의 삶의 철학이 담긴 도구
여기서도 과연 미술이 생존이고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볼까용?
이집트 생명의 근원은 나일강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강
불모지 사막에 생명을 싹틔우는 오아시스임
우기가되면 아프리카 내륙에서 만들어진 진흙. 비옥한 흙이 강물과 함께 범람을 하게되요.
그래서 나일강을 보면 고대부터 나일강 주변에 주거지와 경작지가 형성됨.
강주변을 벗어나면 사막임.
이집트 국토 95%가 사막지대에요. 경작이 가능한 땅은 5% 내외임
이집트 문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 나일강.
나일강 주변에서 발견된 유물은?
나일로미터에요.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해 농사 결과를 예측.
가뭄으로 범람하는 강물의 양이 적으면 흉작이에요.
대홍수가 발생하면 바로 재앙임
당시 이집트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보면
불모의 땅에 기적을 선사한 나일강.
해마다 반복되는 강의 범람을 보며 불모와 풍요가 공존하는것을 본 고대 이집트인들.
죽음과 생명이라는 세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함
그러면서 아주 재밌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지 않을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헛된 꾼이 아닌 영생을 위한 방법을 만든 이집트인들.
" 여기에 미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게 교수의 주장임."
영생을 믿었던 이집트인들 그들이 만든 영생의 조건은
2. 죽은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때문에 망자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정말 현명하게도 영생하기 전에 언젠가 미라가 없어질수도 있고 살아난 영혼이 돌아올 안식처가 없다는 것을 인지함.
그래서 인체조각을 만듭니다.
망자의 조각을 만듬.
영생을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이 조각이에요. 망자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을 함
라호테프와 그의 부인 네페르트에요.
머리카락을 한올한올이 살아있는 느낌임
이집트 카이로의 국립박물관에서 직접 보면 가이드가 손전등으로 얼굴을 비출때가 있어요.
왜냐면 눈동자가 유리로 되어있어서 빛이 나옴.
이집트 조각의 또 다른 특징은 하반신 장애가 잇는 조각 주인
부부상과 가족상이 많습니다.
이집트의 가족관이 돋보이는 조각들.
고대 이집트에서 조각가를 어떻게 불렀을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자.
조각을 통해 영생을 위한 영혼의 안식처를 마련때문에 복제인간을 만들 듯 정교하게 제작.
그럼 이들은 어떻게 인간을 회화로 표현했을까요?
몸은 옆모습인데 눈은 정면인 그림.
이집트인들의 영생을 위한 규칙성이 그림에도 적용되요.
정면성의 원리를 회화에 적용한 이유임.
인간은 영원히 계속되는 삶을 누릴 것이라는 염원.
정면성 원리가 적용된 작품.
새 사냥에 성공한 아빠
이런 걸 남긴 이유는? 풍요롭던 생전의 삶을 사후에도 이어가고 싶은 소망.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했죠?
철저하게 정면성의 원리를 적용함.
20세기 1955년 뉴욕 매거진에 실린 이미지
펜대로 비례를 재고 있는 모습이죠.
각각 다른 위치에 앉은 학생들이 그린 그림은 어떨까요?
그린 그림의 각도가 다 다르겟죠.
다른지점에서 그리면 대상의 못브이 다른게 당연함.
이집트 사람들은 다른 시점을 인정했나요?
엄격한 규칙에 따라 그림을 그려야 영생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이집트인들. 이집트 회화의 또다른 규칙은
당시 기록관이던 헤시라의 초상
네모칸은 성인의 손 폭 치수에요.
발은 3칸. 키는 18칸에서 후기로 갈수록 21칸으로 늘어남.
영원의 세계를 위해 변하지 않는 규칙을 고수함. 회화의 규칙은 앉아 있을때도 적용됩니다.
현존하는 미완성의 작품.
회화에 엄격하게 적용됐던 규칙인 격자무늬.
정면성의 원리와 격자무늬는 영생을 위한 일종의 문자규칙이죠.
때문에 항상 이집트 미술에 적용된건가요?
3천년동안 이어진 이집트 미술의 규칙.
너무나 강력하고 위대한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이들이 원했던건 유지에요.
그들이 이룩한 문명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 세계관에 따라 인간의 영생을 위한 규칙을 세웠던 것.
시대를 반영한 이집트 미술의 변화.
아멘호텝 4세.
그동안 계송되던 이집트의 종교를 전면 부정.
다신교를 숭배하는 내세를 주관하는 많은 신을 없애고 바로 태양의 신 아톤만 남겨요!
아톤을 추종한다는 의미의 아크나톤으로 개명함.
이시기 이집트 미술에서도 보이는 새로운 변화.
기존의 규칙을 무시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하죠.
순수혈통을 유지해 근친결혼을 햇던 이집트 왕실.
유전병으로 아멘호텝 4세가 기형이었다는게 정설임.
파라오의 조각을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든것이 달라진 점?
제사장들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단행햇던 아멘호텝4세.
이로인해 영생을 위한 엄격한 규칙 대신 리얼리즘이 꽃피우기 시작함.
개혁을 시작하던 그의 돌출행동 때문에 결국 쿠데타가 벌어지며 실각함.
이집트의 도시 엘 아마르나에서 아멘호텝 4세 시대의 유물을 발견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이 바로
아멘호텝 4세 부인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이에요.
이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동자가 미완성인 상태로 남겨진 작품임
미술사학자들을 괴롭히는 고민거리중 한 작품이에요.
눈을 미완성으로 둔 이유는 뭘까요?
여러 학설이 있는데 왕비에게 무슨일 생겼을때 대비해 완성을 하려고 준비해뒀다가 부득이하게 이뤄지지 못했던게 아닐까..싶다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임.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 네페르티티의 흉상.
안타깝게도 처음 발견됐을때 1910년 유물 관리 체계가 없던 이집트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서 소장
이집트 미술의 또다른 걸작품은
비운의 소년왕 투탕카멘.
아멘호텝 4세의 쿠데타가 일어난뒤 파라오로 즉위.
하지만 단 9년만에 18세의 나이로 요절합니다.
실제로 미라를 살펴보면 왼쪽 뺨에 깊은 상처가 남아있는.. 이를 근거로 병사보다는 암살의 가능성이 제기됨
비운의 소년왕 투탕카멘
투탕카멘 마스크는 무려 3천 3백년 전에 완성된거에요.
물론 황금이 약 11kg이 들어가 있습니다.
2011년 우리나라에서도 열렸던 투탕카멘 전시회.
이집트 유물의 탑10에 꼽히는 작품이에요.
일부 파라오들은 나일강 서쪽 사막계곡을 무덤으로 사용함
현재까지 이곳에서 63개의 파라오 무덤이 발견됨
63개중 유일하게 도굴을 피한 투탕카멘의 무덤
일반적인 파라오의 무덤은 갱도 길이만 100m 이상의 거대한 규모에요.
투탕카멘은 9년만에 요절함. 추측건대 무덤을 만들 시간도 없었을지도..
다른 파라오에 비해 5분의 1수준의 무덤 규모에 게다가 위치도 안 좋았던..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투탕카멘의 무덤.
이집트 정부가 유물을 관리하기 시작해 현재도 이집트 내에서 발굴된 모든 유물 반출은 엄격히 금지중이에요.
1983년엔 게다가 소급 적용이 가능하도록 법령도 개정함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된 투탕카멘의 무덤속 보물
투탕카멘 무덤의 모습을 보면
급히 무덤을 조성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3400여점의 호화로운 유물이 발견됨
화려함의 극치인 모두 금으로 제작된 부장품들
전장에서 용맹함을 떨치던 투탕카멘의 모습을 묘사한게 잇는데
이 상상속에서 탔던 전차가 발견됐습니다.
공을 들인 파라오들의 부장품은 예를들어 람세스,. 세티등은 박물관 여러개를 더 건설해야 했을 거에요.
도굴이 위험한 이유는 훔친 유물을 온전하게 쓰는게 아니라 유물을 훼손해 판매하는게 목적이기 때문이에요.
문화재 도굴 절대 하면 안됩니다.
실제 일부 이집트 묘지에 기록된 내용
무덤에서 도굴을 막기위한 함정 장치도 발견되죠.
하워드 카터이 투탕카멘 발굴을 지원했던 영국귀족 로드 카나번 경은 이 무덤을 발견하고 약 두달만에
투탕카멘 상처부위와 같은곳을 모기에 물려 사망. 게다가 하워드 카터의 조수들도 급사함.
파라오의 저주가 퍼진 이유에요.
그럼 선봉에 섰던 하워드 카터는 오래 삽니다...ㅋㅋ
무덤에 있는 곰팡이나 박테리아 때문에 위험할 수는 있지만 파라오의 저주는 거짓임.
원시 미술이 생존의 비결이었다면 문명사회로 발전하며 미술은 파라오의 권력을 담은 무기에요.
권력의 상징이된 이집트의 미술.
아부심벨 신전은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가 모래 절벽을 뚫어 지은 신전이죠.
높이가 32m 사람이 인형으로 보일만큼 거대한 크기의 아부심벨신전.
람세스 2세가 만든 아부심벨, 이 거대한 신상은 나일강 상류 지역에 건설됐던 아부심벨신전.
현재로 따지면 수단과의 접경지대
당시 이집트가 가장 두려워했던 나라는 당시 명칭인 수단인 누비아임
가장 먼저 만나게되는 것이 바로 아부심벨 신전이에요.
어렵게 정복한 누비아를 제압하기 위한 람세스 2세의 의지가 담긴 신전임
이집트가 이 세계 초강대국임을 적들에게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죠.
선전 효과도 결국 미술의 힘이에요. 인간의 모든 역사와 함께해 온 미술.
대단히 흥미로운 역사중 하나인데 나일강의 범람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을 이룩했지만
오늘날까지도 범람한다면?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죠.
결국 1971년 결국 아스완 댐을 만들게 됩니다.
문제는 신전이 아스완댐안에 위치함.
훌륭한 문화유산의 수몰을 지켜볼수만은 없던 상황임 이집트정부와 유네스코가 세계적인 모금활동을 전개
실제 아스완댐위에 인공의 산을 만들어 이전을 함.
재조립한느 방식으로 이전 성공.
세계 시민들의 힘으로 수몰의 위기를 극복. 아부심벨 신전 내부의 모습
이집트 전성기를 이륙한 람세스 2세의 업적을 부조로 제작
기원전 13세기 팔레스타인 쟁탕을 위해 카데시 전투 히타이트와 전쟁
이집트 군대가 정복당할 위기의 순간 람세스가 등장합니다.
전차를 타고 수십 발의 활을 쏘며 나타난 람세스
손이 얼마나 빠르면 활을 두개로 표현함.
람세스의 활약으로 승리한 이집트.
자신들의 위대한 역사를 강조하고 기념하기 위한 노력이 미술로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의 강력할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 미술에 새롭게 부여된 역할임.
당시 역사의 증거물로 미술을 사용하고 그들의 메시지에 힘을 싣기 위해 미술의 도움이 필요했떤 것.
우리가 처음부터 살펴본 원시미술을 볼때 그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체험한 것들을 그림으로 남겨 소통해온 원시인들.
이를 계승해 오며 인류를 살아남게 했던 미술.
고대 문명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미술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담아내며 인간의 위대한 역사를 세상에 드러내는 지표로 작용.
인류역사의 모든 순간에 미술은 존재
그것이 미술의 DNA가 되어 현대 미술로 이어지는 것.
발견 당시의 모습대로 옮겨진 아부심벨.
복원보다 원형 유지가 최근 복원의 철학임
해외 미술관, 박물관에서 본 풍경이
그런 모습에 미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들.
선진국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에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요?
인간의 경험을 보여줄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존재하죠.
미술은 그 경험을 한눈에 보여주는 고도의 타임캡슐이에요.
인간과 떼려야 뗄수 없는 미술을 일부 사람들만 이해하고 향유하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이 미술을 즐길수 있기 바라며..
<출처: jtbc 차이나는클라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