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7 - [티비속 정보.] - 어쩌다 어른 심용환, 아름다운 제주의 슬픈 역사 4.3사건
1960~1970년은 고문의 시대였죠.
사람을 괴롭히고 무너뜨리고 죽이던 시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어이 없는 경찰 발표
자백을 강요하며 저지른 끔직한 만행..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지속된 고문의 후유증
이제는 외면하지 말고 직면해야할 때 입니다.
고 김근태는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전기고문의 고통을 받아 몸속 수분이 다 빠질 정도로 연이은 고문이었다고
1980년대 재일교포 고문 방법을 보면 전기코일을 성기에 감아 고문하기도하고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고문 방법들임..ㅠㅠ
무차별 폭력에 이어 심리적으로 모욕을 주는 고문도 있고
인간이 가진 그 잔인함에 분노하게됨
군사정권위 위기 대마다 터진 대규모 간첩단 사건들
중요한건 사건을 터뜨려 공포분위기 조성하던 시절
당시엔 검열되고 제한된 정보만 얻었던 시민들
반공의식을 심기 위한 의도로 자행된 정치 폭력
민청학련 사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단원들 중심으로 인민 혁명 시도 혐의로 대거기속, 구속된 사건
이른바 정찰제 판결?! 일반적인 재판이라면 피고와 원고 입장을 들은 후
최종 판결 내리기까지 심사숙고하기 마련임
그러나 구형대로 초고속 선고를 함 심지어 변호인은 입회도 못한!
사형 집행 선고 18시간만에 바로 사형함
지난봄,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끌려갔습니다.
봄, 여름이 지나도 가을이 가도
당신은 내 삶의 전부였습니다.
고문에 으스러진 당신 손을 꼭, 꼭 미소로 붙잡고
차라리 당신 곁에 눕고 싶습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남편을 잃은 슬픔
처음 접한 이후로 여운이 가시지 않는 글
이별의 아픔이 치유되기도전에 빨갱이의 자식으로 낙인찍혀 괴롭힘 당하고 있던 아이
돌팔매질에도 그저 맞고만 있던 이유는
갈수록 더 잔인해지는 괴롭힘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보다 원망이 더 커지는 현실
고문으로 인해 한 사람의 생이 짓밟히는 건 물론 살아남은 자들의 계속되는 고통도 큰 문제임
끝내 가족 해체 현상까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임
무고한 생명을 짓밟고 폭력을 정당화 시켰던 정권
아무도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잔혹한 역사
요즘에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외침인 미투!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낸 여성들이 과거에도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학업은 고사하고 바로 공장으로 취업
딸보다 아들이 먼저 남아선호사상 중심 사회
1970~1980년대 소설에서보면 갓 상경한 여자주인공은
바로 직진하면 공장에 취업하는거고 누가 말걸면 사창가로 가게된다고
그만큼 좁았던 여성의 사회진출 폭
철창 없는 감옥에 갇힌 거나 다름없는 청춘들은 숙명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공장 생활을함
12시간 교대 근무도 모자라 초과 근무를 강요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잔업수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음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점심 식사를 하고
휴일없이 밤낮없이 오로지 일만 하는데 2~3주에 한번 쉴까 말까했다고
결근이라도 했다하면 폭력 행사하고 여성도 예외 없음
일부 여성 노동자에겐 성추행까지!!
노동자를 위한 선교 활동 지원을 하려고 만들고보니 노동자들의 현실을 마주
노동자들의 현실 문제 개선을 위해 사회운동을 전개
들어줄리가 만무하죠. 혼자서 얘기했다면? 어김없이 폭행을 함
자연스레 노조를 형성하게 되고 여성 노조위원장을 선출했지만
정단한 권리 요구를 들어줫을까요? 더 심한 탄압이 들어옵니다.
기술직, 관리직의 남성 노동자는 회사 편에서 동조하고 더 심해진 회사의 압박
요즘 사회라면 언론 고발감이고 법적 소송감이죠.
다수의 희생은 감수한다는 풍토인데 호소를 해도 들어주는 이 없고 국가 또한 회사편임
여성 노조위원장 선출을 막기 위한 강제 작업들
대부분 기숙사에 살았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기숙사 감금 조치를 하고
회사와 여성노동자 간의 갈등의 불씨가 됨
일부 남성 노동자가 구출하면 도와줬다는 이유로 왕따로 전락함
결국 전기, 수도, 화장실까지 차단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함
동일방직 노동자들ㅇ게 공분을 일으킨 사건임
수백 명 여성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농성과 항의
체포된 노동자들 외에 남겨진 분들의 최후의 보루
나체 여성들은 남자들이 손을 못댄대.. 알몸으로 저항하기로 결정함
노출이 금지된 엄격한 사회 규제 속에 여성 노동자들의 과감한 행동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경찰은 멘붕임 정적도 잠시
무력으로 강제 진압을 했지만 알몸 상태로 끝까지 저항하는 노동자들
이후 트라우마로 후유증을 앓기도 하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농성 활동
여성 노동 지도자들의 속옷 속으로 인분 테러를 함
대체 왜 여성 노동자들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반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여성의 인권이 몰락했는가?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1986년 6월에 사건이 발생
노동운동 발전을 위해 가명, 학력을 위조해 위장 취업을 함
부천 경찰서로 연행된뒤 수사를 시작함
문귀동 경장에 의해 성적 모욕과 폭행을 당함
폭력, 성추행은 기본이고 지금은 용납할수 없는 성적 모욕들이 성행했음
당시 여성 인권의 민낯
고도의 성추행은 기정사실 더 큰 죄를 짊어질수 있기에
모른척하고..무마하자.. 하며 사회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원인 제공자로 둔갑되어 버림
가족조차도 외면했던 현실임. 수사를 빙자한 성고문을 당한 후 자살 충동까지 느꼇지만 가족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았으나.. 만류했다고
큰 용기가 필요한일로 결국 인권 변호인단과 함께 정식 고발을 함
성고문은 날조라는 공안당국의 공식 발표를 하고 운동권 세력의 의지를 꺾기 위해
여론몰이를 시작합니다.
전두환 정권 보도지침에 따라 언론이 왜곡 보도하고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가석방됨
민주세력을 결집시키고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지만
왜 폭로하기까지 용기를 내야 했는가!
왜 국가 권력 앞에 두려워해야 했는가!
왜 진실을 말하고도 처벌을 받앗는가.!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했으면...
암울했던 한국현대사
부마항쟁을 기억하시나요?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부산 및 마산에서 벌어진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말해요
부산대 학생들의 교내 시위로 시작해 부산시와 마산시로 확산됨
10월 18일 부산 계엄령 선포, 10월 20일 마산 위수령 발동
이전 계엄령 선포와는 다른 차원임
무장군인을 주둔시켜 학생,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함
건방지다는 이유로!
공수부대 장교가 소총으로 머리를 가격해 뇌 수술까지하게됨
국민을 보호해야할 군인인데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상황
문제는!! 군인이 무력을 학습하면서 대학살극의 전초가 된 것
7년간 지속된 유신 체제의 종말이 오고
약 20년간 군사 독재 정권 유지를 위한 군부 내 사조직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조직으로
하나회 수장이 전두환과 노태우였음
유신 체제 종말 후 민주화 실현의 희망을 가졌지만 끝나지 않은 군사정권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킴
육사 11기생인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쿠데타
국민들은 사태의 원인을 몰랐지만 사실은 정권을 장악하려는 계획
사태가 수습되고 민주화를 염원한 국민 그렇게 4~ 5개월이 흐르고
민주화 일정이 불투명함
서울역 회군은 1980년 5월 계엄령 하에 억눌린 10만 대학생, 시민이 가두시위를함
시국을 관망하고자 자발적 해산을 함
비상계엄이 전국에 확대되고 전국 보안 목표로 계엄군을 투입함
군대와 충돌하며 광주의 비극이 시작됨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0일간의 항쟁
1980년 5월 27일
탱크와 헬기로 무장한 계엄군에 맞서 시위대 최후의 저항
대한민국에서 가장 길었던 열흘
인권 유린의 극치이자 한국 역사의 최대 위기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까지 살상, 폭행을 함
안타까운 사연중 하나는.. 택시타고 공항에 가던 신혼부부를 폭행을 해 생명이 위급한 상황으로 도와주려는 택시기사를 막아선 군인
앞선 부마항쟁으로 민중은 진압 가능할 뿐 아니라 쏴 죽여도 되는 존재로 인식
저항할수록 잔혹한 수단을 동원하고 저지른 반행을 합리화하기 급급했던 군대
급기야 언론 탄압까지!!
외신을 통해 독일에 전해진 광주 소식을 듣고 곧장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
도청하고 있다가 광주 얘기만 나오면 강제 차단함
타지역에 퍼지지 않게 강제 차단함 오늘날 상상조차 불가한 일이죠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소문만 무성했을 뿐 간첩의 실체가 없음
오늘날까지 계속된 여론몰이의 진실
시민들의 무장 행위만 부각해 반역자로 규정하고 처단함
사건의 원인, 결과 맥락을 고려해 극히 일부분만 확대해 왜곡시킴
이등 국민 취급해버린 고통의 역사
광주시민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24시간 감시받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가택연금을 하던중인데
이런일이 일어난게 김대중과 연통하며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래저래 앞뒤가 안 맞는 상황임
오랜 시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온 아픈 역사
전두환 정권에서는 정반대 전략을 구사함
여의도에서 열린 국가 차원 행사임
인권을 짓밟고 권력 장악한 후 단군 이래 최대의 놀자판이었음
국풍81은 1981년 전두환 정구너이 국학 고취 명분으로 여의도 광장에서 주최한 대규모 축제예요.
전통 민속인 연예인들까지 참여해 무려 659회 공연을 함
5.18 1주기에 국민적 관심을 축소하고자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함
대대적인 축제 분위기를 유도
일반 김밥은 각종 속 재료를 첨가하는데
충무 김밥은 충무(옛 통영)의 더운 날씨에 상하지 않도록 만든 어부 도시락에서 유래됐어요.
통영에서온 할머니로 인해 전국적으로 화제가되고 프로야구를 빛내는 연예인들의 시구도 이때 만들어짐
1980년 광주의 희생은 조용히 덮어버리고 정치적 관심을 문화로 돌리려는 꼼수
국민을 우롱한 우민화 정책임
조직저 체계적으로 이뤄진 3S 정책
할리우드 영화에 푹 빠진~ 많은 남학생들에게 영우으로 자리매김함
눈과 귀를 현혹하는 대중매체의 본격 유입이 시작됨
마침 부모님이 안 계셨던 날이라 친구 5명과 함께 귀가했다고
그뿐만 아니라 1982년 야간 통행금지 폐지함 저절로 유흥업소가 활성화됨
자유와 문화를 누릴 권리를 확대 현상만 본다면 긍정적인 효과지만
향유할수 잇는 문화가 늘어나면서 한국 문화 성장의 발판을 마련함
그러나 현상 속 의도를 파악한다면 국민의 눈과 귀를 닫은 것뿐!
쾌락에 빠져 본질을 잊지 않게 경계해야 하는 이유!
반면 유럽의 동상 모습은? 무론 웅장한 동상들도 존재하지만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만난 동상의 경우
우리키와 비슷한 높이의 동상임
최소 자서전 10권은 나올 위인들, 시대를 대표했던 영웅들인데
외국의 경우
쇠사슬에 묶인 처참한 몰골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던..
비슷한 눈높이와 비슷한 삶을 가지고 있는 동상임
동상에 투영되는 의식 수준
대한민국은 비범한 사람만 기록됨 반면 인권의식이 더 발전한 국가의 경우
평범한 사람도 역사의 주역으로 인정함
그들을 기리는 곳곳의 작은 공원
무질서하게 서 있는 동상들의 소리없는 외침
조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생생하게 전달됨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발전하게 하는 역사의 힘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며 목 놓아 외쳤지만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은 누군가
그들의 희생으로 쟁취한 인권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책임감으로
사회적 차원의 치유가 필요할때입니다.
이제 인권의 외침이 들리십니까?
<출처: otvN 어쩌다어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