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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임석재선생님의 18~19세기 유럽 건축사를 말하다.

by 로토루아8 202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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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서양 건축사!

18~19세기 유럽의 건축사!

정답은 신전임!!

그리고 신전은 건물 종류고 건물 하나만 꼽으라면 파르테논 신전이라고함.

그리스 아테네.

기둥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로 그리스 신전이 서양 건축과 문명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18~19세기에요.

대표적인 예를 보면

파리 루브르 궁전 이스트 윙 1670.

그리스식 기둥과 신들의 조각상이 어우러져 있는 웅장한 느낌.

파르테논 신전을 본뜬 20세기 그리스 신전 양식 건축물.

그리스풍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캠퍼스 2018년 문화재로 등록됨.

덕수궁 석조전.!

고종이 세운 최초의 서양식 궁궐로 2014년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함.

파리 베를린 워싱턴 D.C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있는 그리스 신전 양식 건축물.

그리스 문명이 서양 문명의 뿌리라면 과연 어떤 점에서 영향을 끼쳤을까.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음.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약 2500년의 세월을 보내며 지금은 형태만 남아있는 파르테논 신전.

그리스가 마라톤 전투 BC 490년에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여신 아테나를 칭송하기 위해 건립한 건축물임.

BC.5세기 고대 그리스 전성기 그릭월드시절 나폴리,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남부지방까지 그리스 식민지였음.

그리스 전역에 세워진 신전.

그리스 문명의 몰락. 신전의 존재도 입혀짐.

그러다가 18세기 들어오면서 당시 그리스 신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유럽인들.

어떻게 생겼을지는 대강은 알았는데 중요한것은 실물승부.

건축물은 현장에서 직접 봐야함.

그리스 신전을 몰랐던 이유는 1. 교통수단의 어려움.

2. 오스만튀르크의 그리스 지배 15~18c

오스만튀르크= 이슬람, 서유럽은 기독교임.

한창 갈등이 심할때는 그리스가면 죽기까지함.

17세기 말부터 힘이 약해진 오스만튀르크.

드디어 그리스 땅에 서 있는 신전을 직접 목격하게됨.

유럽인들에게 온 컬처 쇼크! 의외로 유럽인들이 똑똑해진 게 18세기 부터에요.

서양 문명사에서 있었던 세번의 큰 번혁기.

데카르트, 뉴턴, 코레프니쿠스

기존의 우조와 자연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꾼 과학 혁명.

그영향으로 나타난게 계몽주의에요. 계몽주의는 합리적, 과학적 인식에 의한 이성으로 인류 문명의 발전을 꾀하려는 사상임.

우리가 사는 시대는 사실 18세기 무렵에 있었던 3가지 혁명의 결과물이거든요.

18세기 무렵에 있었던 세가지 혁명은 현재의 지식, 정보의 바탕이 된 17세기말 과학혁명.

기술혁신과 사회구조 변화를 이끈 산업혁명. 1760~1830년.

18세기 신석기, 철기 혁명과 맞먹는 문명 변혁기.

세가지 혁명이 몰려있던 시대. 문명 변혁기가 되면 서양 문명은 항상 발전 모델을 정해요.

때마침 그리스를 넘어갈수 있게 된 유럽인들. 근대 문명에 맞는 건축모델을 찾은 결과

그리스 신전이 적격이었음. 유럽인들의 지성을 깨운 그리스 신전. 서양 근대 문명의 변화가 시작되면서

그중에서 험난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그리스 신전.

그리스 몰락후 B.C. 로마 문명의 시작.

그리스와 로마는 완전히 성격히 다른 문명이에요. 그리스 영향을 받아 로마 시전을 짓긴 했으나

그리스 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음.

이후 로마 제국 중심의 건축으로 변화함.

로마 양식을 계승한 서양 건축의 흐름.

로마 판테온은 벽체와 아치구조로 되어 있는 대표적인 로마 건축양식임.

성 소피아 성당은 동로마 제국 시기에 건립되어 비잔틴 건축의 최고의 걸작임.

로마네스크= 로마다운

아치 구조와 두꺼운 벽이 특징임.

고딕 건축은 높은 천장과 첨탑 으로 아치 양식이 가미된 것이 특징임.

르네상스 건축은 로마 고전주의의 부활.

교회를 로마 양식으로 건축함.

17세기말 바로크는 로마 건축 양식의 끝판왕임.

17세기까지 서양문화는 로마 문화임. 학자 예술가등 지성인들의 핫플레이스가 로마였음.

프랑스, 영국, 독일 상류층 자제들이 경험과 배움을 위해 로마로 유학을 감.

그랜드 투어라고해서 17~19세기 초에 유행한 유럽 상류층 자제들이 이탈리아로 떠나는 여행을 말함.

당시 서양 예술가들의 이력을 보면 예술가로 성장하는 교육과정에서 대부분 그랜드 투어는 필수코스로 다녀옴.

낭만주의자였던 괴테.

로마 여행 후 고전주의 매력에 빠짐. 그리스로 확장된 그랜드 투어 영역. 신비의 대상인 그리스 신전을 직접 보게된 유럽인들.

꿈의 장소였던 그리스 신전. 당시 유럽인들의 반응은?

그런데 저 한장의 그림이 18ㅔ기 유럽 지성계를 뒤흔듦.

2천 년만에 마주한 서양 문명의 뿌리.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 신전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화려한 바로크 건축물이 유행하던 시기.. 그리스 문명에 대한 환상이 있었을거에요.

기대와는 달리 세상 단순함.

1830년대 고고학 발굴로 알게 된 사실.

기존에 있던 장식들이 오랜 세월에 의해 소실된 것.

파르테논 신전이 부서진 이유는?

베네치아 vs 오스만튀르크 전쟁에서

1687년 9월 26일 베네치아 군이 신전을 향해 포격함.

폐허가 되어버린 파르테논 신전.

처음엔 신전을 보고 실망한 유럽인들. 그러나 새로운 사상들을 접하면서 그리스 신전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기 시작함.

크게 세 그룹. 낭만주의.

낭만하면 떠오르는 것은?

일상에서 쉽게 쓰이는 낭만. 서양문명에서 낭만성의 개념은 16~17세기까지 없었다고 보면 돼요.

낭만= 아름다운 자연 풍경.

픽처레스크의 등장. 

픽처레스크는 그림같은 이란 뜻이에요.

알프스 초원+ 예쁜 농가들이 픽처레스크 예시임.

이후 픽처레스크의 대상이 자연에서 건물로 확장됨.

동양에서 자연성은 손을 대지 않은 것. 그런데 폐혀는 별로 안 좋아함.

형식을 중요시하는 서양 문명. 손을 대지 않은 것은 예술이 아님.

형식주의는 예술에 자연성을 갖춘 것.= 폐허의 그리스 신전인거에요.

숭고미로 발전. 아름답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신비함.

숭고미는 자연에서 온다. 인간이 어떻게 할수 없는 초월성.


꽃도 자연이고 아름다운 농촌풍경도 자연이지만 대자연을 앞에 두고 섰을때의 느낌.

형언할수 없는 감정이 숭고미.

예를 들어 꽃, 농촌풍경은 인간이 다룰수 있는 자연이잖아요. 저건 초월하죠.

건축적 숭고미의 특징이 시간성이에요.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그리스 신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폐허에서 예술의 가치를 느낀 것.

폐허의 미학은 20세기 파괴의 미학으로 발전.

파괴의 미학은 현대 건축물의 아이디어로 전환.

파괴 미학의 최고봉인 해체주의.

동대문에 있는 DDP

해체주의 건축의 단점은

1. 공사가 어렵다. 2 공사비가 많이든다.공간 효율도 떨어지고 더 문제는

도전정신이 필요함.

해체주의 건축은 선언적 의미는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요.

노출 콘크리트의 유행이 산업주의 + 폐허의 미학이라고하네요.

건축가들이 한번쯤은 구현하고 싶은 장면이라고함.

18세가 폐허가 낭만을 만난 이후 낭만성의 확장. 낭만이 일상으로 됨.


과거의 낭만이 천재 화가들이 그린 풍경이라면 천재 화가달의 예술 세계에서 존재하던 낭만이

일상 공간인 정원으로.

일상성으로 바뀌게됨.

우리도 이미 가지고 있죠. 네개나 있음.

그만큼 일상 가까이 있다는..! 그렇다면 도시에는?

도시에 도로, 고층 빌딩만 있는게 아니라 빌딩사이에 

바쁜 일상에서 잠시 숨을 돌릴수 있는 쉼터의 역할.

일상의 휴식을 위해 등장한 공공 쉼터.

시민을 위한 건축물임.

라 빌레트 공원.

세계적인 현대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에 의해 설계되어 도살장과 정육점이 있던 자리에 공원으로 만듦.

붉은색 폴리 건축물을 곳곳에 배치함. 공원의 분위기를 역동성 있게 조성.

우리나라에도 폴리를 도입.

광주비엔날레 일환으로 기획.

30개의 폴리를 충장로와 금남로 일대에 설치했다고함.

사물, 소품이 주는 의미는 평범한 일상의 위대함.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근대성 중 하나에요. 개인의 일상은 중요하지 않았던 18세기이전 과거.

기독교주의 고전주의 지금은 개개인의 일상이 소중한 가치로 변화됨.

폴리는 서양 도시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에요. 서양 도시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 폴리.

그리스 신전에 대한 남다른 해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그리스 신전이 위대한 또 다른 이유는 원형의 미학임.

서양문명의 원조는 그리스에요. 그리스 원형의 미학 창시자

바티칸 도서관의 유물 창고에서 그리스 조각품을 발견한 빙켈만.

로마 예술과는 다른 가치를 발견. 과거 그리스는 로마의 아버지임. 하지만 왜 아버지인지 모름.

18세기 전만 해도 노블하면 화려, 아름다움, 값비싼. 하지만

노블과 심플리시티는 반대개념이죠.

빙켈만이 두개념을 하나로 합침. 건축으로 따지면 기둥 건축.

불필요한 장식은 배제하고 기둥 중심의 그리스 건축.

화려한 장식들이 덧대어진 벽체 중심의 로마건축.

이후 기둥과 벽체로 대표되는 그리스주의와 로마주의의 충돌.


당시 피라네시의 위엄은  로마 그랜드 투어 필수코스가 피라네시 스튜디오에요.

점점 빙켈만의 추종자들이 프랑스와 독일에 생기고

빙켈만이 세력이 커지면서 라이벌이 됨. 미움을 많이 받아요.

당시 주류는 로마주의였기 때문에 로마주의에서 관련 사업들도 많이 나오고 어느날 빙켈만의 의문의 죽음.

로마주의자들에게 타살된것으로 추정된다고함.

우리가 사는 20세기 현대건축이 철골과 콘크리트를 기본 재료로 한 기둥 건축이거든요.

의문의 죽음을 당했지만 그리스 연구를 통해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빙켈만. 단순한 구조, 기본에 충실한 형태.

그리스 예술에서 원형의 가치를 발견한 빙켈만. 그리스신전은 20세기 현대 건축의 뿌리가 되죠.

폐허의 신전을 본 또 다른 그룹.

낭만이 아닌 전혀 다른 생각!

엔지니어 형 건축가. 건축가도 유형이 있음. 지금 21세기 건축가는 사장님 형.

뭐니뭐니해도 비즈니스를 잘해야되죠.

건물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17세기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과학 혁명이 시작되면서 미적분으로 무장한 새로운 유형의 건축가들이 등장함.

엔지니어형 건축가.

소위 데카르트 키드라고 불러요.

그리스 신전은 구조합리주의 모델이라고 말함.

구조 합리주의란? 경제성, 효율성, 기능성을 중시함.

그렇다면 엔지니어 형 건축가의 눈에 바로크 건축은? 로마 교황청 내 성 베드로 대성당을 공격.

성 베드로 대성당은 화려한 그림 과도한 장식의 벽체 건축임.

건물에 쓰인 벽체를 공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대 권력자들은 그림을 위해 건물의 바탕면을 확보.

17세기 말에 등장한 자유 상공인.

부르주아들이 등장. 모든게 비즈니스임.

부르주아들에 의해 그림이 벽체에서 액자로 이동하게됨.

15~16세기는 무슨시대죠? 대항해시대임. 유럽인들이 남미로 들어가는 시기로.

금을 실어옴.

스페인 보물선인 산호세호. 1708년 남미에서 금을 실어오던 산호세호.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고 침몰함. 

추정하기로 20조원어치의 보물이 있다고함.

공학적으로 재료 낭비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정신에도 부적절함.

건축가들의 비판과 기독교 내부 자정운동이 맞물리면서 로마 교황청을 공격함. 

엔지니어 형 건축가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성직자들의 등장.

이신론은 기독교 정신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운동이에요.

기독교계 데카르트 키드. 이신론자들이 주장한 내용.

이신론자들이 남긴 업적.

성베드로 대성당과 기독교 부패 권력을 한꺼번에 공격함.

인신론 성직자와 엔지니어 형 건축가가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함.

이신론자 가운데 건축에 관심 있던 성직자들. 교회는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가.

가장 파격적인 주장을 합니다.

벽체가 다 부셔져 있음. 로마의 벽체 구조를 비판함.

필요한 것만 남겨보니 기둥 건축임. 기둥 네개면 충분하다.

새로운 교회 모델을 제시한거에요.

그레코- 고딕 아이디얼 양식임. 그레코라는 말은 들어봤죠?

레슬링에서 상체만 쓰는 기술이 그레코로만인데 그레코는 그리스의 코만은 로만식.

한덩어리였던 그리스- 로마주의가 분리됨. 분리된 그리스 양식에 기독교 고딕 양식이 더해짐.

바로크식 건물은 빛이 없어요.

창문대신 그림과 장식품으로 치장되어 잇는 바로크식 벽체.

성경에서 빛은 중요한 의미에요. 바로크식 교회건물은 빛을 막았던 것.

그래서 전혀 다른 두 건축 양식이 하나가 되는데 그레코- 고딕 아이디얼이 등장.

파리 판테온을 두고 벌어진 공학적 논쟁.

돔이 무게가 많이 나감. 지붕 면적이 제일 작은것이 평지붕이에요. 그에 비해 돔 지붕은 훨씬 면적이 넓음.

돔은 바닥 면적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요. 더군다나 철근 콘크리트가 나오기 전이라 돌기둥만으로는 돔은 무리임.

그런데 이때 엔지니어 형 건축가들이 나오면서 

김둥으로 돔을 받쳐보리라!

프랑스 건축가 수플로. 그러나 엔지니어들의 반발.

판테온 건설을 두고 30년간 이어진 건축가와 엔지니어 간의 대립.

수플로 사후 그의 계산에 무리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짐.

최소한의 벽체만 남겨두고 기둥으로 승부함.

판테온보다 더 빛을 살린 건물임.

실제 돔은 저 기둥으로 못 받쳐요. 렌이 원했던 것은

렌이 원했던 것은 트릭을 써서라도 기둥만으로 돔을 받쳐 보는 것.

순도는 떨어지지만 그 당시 문학적 논쟁으로 봐서는 교회 건축물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인거 같다고함.

서양의 형식주의 전통!! 동서양 공통 하늘은 둥글다.

서양문명은 추상적인 생각을 형상화한게 둥근 하늘은 돔. 서양에선 돔을 좋아해요.

국회의사당 돔은 근대로 넘어오면서 독재 권력이 좋아했던 건축형식이기도 해요.

1968년 1차 설계 당시 평지붕이었으나 일부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돔을 추가함.

국가권력을 시각화하는데 적절했던 돔 구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부서진 국회의사당 돔.

권력의 상징에서 시민들에게 개방된 장소로~됨

18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교회 건축 모델을 그리스 신전 관점에서 요약, 정리해보면 그리스 신전의 특징은 기둥건축.

기둥건축에 담긴 의미는 합리성이에요. 꼭 필요한 것만 갖추자.

자원의 낭비없이 효율적 구조로 지어진 그리스 신전. 합리성을 추구햇던 사람들에 의해 그동안 대립했던 그리스 양식과고딕 양식이

더 큰 가치를 위해 하나로 이게 화해. 현대의 다양성을 통해 융합이 되다.

고전에서 답을 찾고. 종교에서 가치를 찾은 18세기. 기술성장과 함께 진정한 문화예술의 성장을 이루다.

그리스 신전을 개별 건물로 본 18세기. 19세기에는 도시, 사회의 모델로 확장함. 이때부터 유럽의 산업화가 진행됩니다.

다양한 문화 운도잉 하나로 모아져요. 모으는 주체가 제국임.

영국하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함. 순수한 이상, 사상적 운동은 사라지고 서양의 형식주의 전통!

현실 싸움판이 시작되죠.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철골이 건축의 재료가 되고

그야말로 도시의 변혁기! 유럽의 근대적 대도시의 기본 골격이 19세기에 등장함. 이때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책무.

새로운 도시 모델을 찾아라! 

19세기 건축가들이 주목한 도시 모델이 고대 그리스에요.

19세기 건축가, 화가, 고고학자.들이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발굴함.

고대 그리스의 복원도를 그림.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이상도시로 그림.

그리스 신전이 사회중심 역할을 했던 곳임. 교외에 일정한 단지를 만들어요.

탁선소의 핵심 기능은 학자들이 공부하러 가기도하고 복합문화공간임.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국가마다 탁선소가 존재함.

신전이 중심에 위치해있음.

신전을 중심으로 사회가 형성됨. 그리스 신전은 개별 건물로서 가진 교훈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도시 중심 역할까지 하고 있었던.

신전이 곧 정신적 공간임. 도시의 중심공간에 신전이 자리하고 신전을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형태임.


그리스 시대 때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그래서 여러 학문 예술이 꽃피우지 않았을까. 좋은점을 이상적 가치로. 19세기에도 이어진 정신적 공간의 중요성.

20세기 버전으로 확장을 합니다.

18세기만 해도 없었던 보편 교육. 19세기의 제국 체제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보면 비판의 대상이지만

시민들에게 기본 혜택을 다양하게 제공한 측면도 존재함. 대표적인 예가 공공 박물관, 미술관 건립임.

유럽 주요 국가의 수도를 보면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베를린 박물관 섬등 대형 문화시설들이 정신적 공간으로 등장함.

제국 정부이긴 하나 돈은 부르주아가!

산업혁명으로 급성장한 부르주아.

공장, 백화점이 아니라 문화 공간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여가 공간을 위해 도시게획에 투자한 부르주아.

도시 재개발 사업의 대표적인 예는 파리에요.

우리가 알고있는 파리의 모습은 사실 19세기때 만들어진 것.

새로운 도시계획에 따라 넓은 광장과 대로, 건축물이 생겨나면서 매력적인 도시로 탈바꿈함.

중세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많이 남아있었던 파리. 나폴레옹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을 재편함.

로마 제국 당시의 건축 양식을 도시 중심에 배치. 그후 나폴레옹 3세때 파리 재개발 계획.

도시를 관통하는 방사선 도로와 함께 도시의 중심을 문화공간으로 개조함.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오페라 가르니에 하우스/ 마들렌 교회.

오스만 남작의 또 다른 작품은  오페라 가르니에 하우스임.

종교와 문화공간이 근대적 대도시의 중심공간으로 자리함.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인간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

영국의 트라팔가 광장.

세이트 마틴 교회: 종교공간. 도시의 중심인 광장에 정신적 공간으로 종교와 문화 공간이 자리함.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대도시의 중심 역할을 수행함.

베를린에 있는 슈프레강.

우리나라로 치면 노들섬 정도 크기라고함. 슈프레강을 끼고 있는 박물관 섬.

베룰른 구 국립미술관.

단지를 이루는 베르린 박물관 섬.

긍정 건축가인 스튈러가 설계하며 남긴 조망도를 보면.

아크로폴리스 모델을 차용한 베를린 박물관 섬 조망도.

그러나 중심에 신전이 있다는 것은 동일함.

이런 식의 모습이 19세기의 유럽을 이끌게 되는데 도시의 중심에 담긴 정신이 우리가 사는 근대성의 뿌리.

세계화의 거센 공세 속에서도 유럽인들을 지켜주었던 정신적 공간.

도시의 중심에서 인간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다.

20세기까지 서양문명을 부러워하던 경향이 있었죠.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 되돌아볼때에요.

과거의 여의도 광장은 정치집회와 국가행사가 열리는 곳이었는데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당시 100만명이 모이기도함.

과거엔 아스팔트. 직므은 숲이 있는 공원으로 변화함.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공간인 광화문.

어른들은 경복궁, 젊은 세대는 광화문임.

유럽의 도시 모델을 우리나라에 적용해보면 우리도 생각보다 정신적 공간이 많음.

경복궁 1395

종묘. 1394~1395.

국립중앙 박물관도 문화적 정신공간임.

예술의 전당도.

명동 성당도!

조계사도.

시민들 가까이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건축물. 근현대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것을 이룬 우리나라.

한국 사회의 심각한 자본화. 정신적 공간이 갖춰져는 있는데 대부분 상업 공간에서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들.

기술문명이 가져다준 편리와 최소한의 물질 풍요는 누리되 우리 주변에 있는 정신적 공간에 관심을 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중심공간으로서 광장의 문제.

광장은 우리나라 도시와는 연관이 없는 주제였는데 우리나라 전통엔 광장 개념이 없음. 

우리는 시민이 없었어요. 백성은 있어도.

시민과 백성의 차이는 정치 지분의 유무에요. 왕권과 신권뿐이었던 우리나라.

시민이 생활을 영위하고 권리를 행사할수 있는 공간이 광장이에요.

20세기 이후 시민의 등장. 시민들의 공간이 광장이 필요함. 지금와서 만들려고 하니..

어마어마한 땅값과 교통 문제가 심각함. 광장 후보가 마땅찮음.

한쪽만 막자도 등장함.

광장없이 도시화가 진행된 서울에 뒤늦게 서양의 광장을 끼워 넣으려니 생기는 문제임.

그것보다는 포괄적으로 우리도시에 맞는 광장은 무엇일까. 한국적 광장 모델을 찾는것이 우선임.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 잇는 놀이터.라고.

함께 살다가 만들어지는 동네 놀이터처럼. 그런 편안한 공간이 우리의 광장이 되면 어떨까요.

건축이 갖는 사회적 역할의 사례로 18~19세기 유럽 건추을 들었던 이유는 고전과 전통의 가치.

시대에 맞게 해석해 나가면서 그 속에 담겨있는 좋은 내용은 이어받고 그것을 현대에 잘 적용해서 우리의 인간성을 보호해줄수 있는

좋은 문명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자.

건축을 통해 돌아본 근대 문명과 사회.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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