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가수 이승철과 네버엔딩 스토리 발표!
평소 친분 있었던 김구라가 눈여겨 봤던 김태원의 입담
뒷모습은 미인상으로
여리여리한 뒤태와 머릿결로 국민할매에 등극!!
예능으로 존재감을 알리자 부활의 리더로서도 재조명되었다고해요.
노력과 연구 끝에 개그를 하는 개그맨들
반면 웃길 생각이 없는데 웃기는 김태원
뮤지션 김태원의 예능 출연이 생소했던 다른 뮤지션들
뮤지션이 예능 영역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고
세상에 대해 반응하는 록그룹은
너무 대중적이면 세상과의 타협으로 간주.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예능 세계
반항정신은 세상을 향한 분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로커
김태원이 가지고 있는 친화력 덕분에 부드럽게 넘어가
카리스마 로커에서 예능인으로 변신에 성공한거 같다고
예능에선 힘없고 건망증 심각한 할매 캐릭터
20대초반 처음 만남을 가진 김도균과 김태원
록 그룹들의 집합소인 1980년대 이태원에 위치한 라이브 클럽
에서 록음악을 하던 젊은 뮤지션들에게
쎄시봉 같았던 라이브 클럽이라고해요.
대학생 같이 짧은 머리에 안경까지
고시생같았다고해요.
음악에 대한 열정과 학문적 탐구심이 깊었던 김태원은
학창시절 김억삼이라고 불렸던 김태원은
김억삼이란? 억마디 말을 하면 세마디만 진실이란 뜻이라고하네요.
거짓말 때문에 기타 치는 원동력이 됐다고해요.
레드제플린은 1968년 결성된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으로
어느새 공부와는 이별하고 기타 제일 잘 치는 아이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고해요.
난 원래 창작에 능하다고 한다고..ㅋㅋ
초등학생이 될 무렵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힘들어진 가정형편
운수업에서 항공업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실패
부의 상징인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교복을 물려 입었던 김태원은
관리 안된 교복으로 청결하지 못해서 따돌림을 받았다고해요.
몸이 망가진 것보단 마음이 망가진 게 문제
등교한다고 나왔지만 차마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학교 담장을 돌며 아버지를 기다렸었다고해요.
사람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한다고하네요.
그이유는 사람에 대한 이유없는 공포
직업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게 자유로워야 하는데
우울하거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경우가 많아
음주나 좋아하는 일을 할 경우에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고해요.
공부안하고 기타만 치면 맞았던 그때 그 시절
밤마다 피나는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던 시절이라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벽이 선글라스라
지금은 트레이드마크지만 절박했던 이유로 선글라스를 착용하는거라고하네요.
간경화 오진 판명이 났다고해요.
그래서 그다음부턴 다시 술을 열심히 먹었다고.
2011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건강진단을 했는데
하지만 뜻밖에 너무나 중대한 사태가 발생
다행히 1차2차 수술 경과가 좋지만
ㅅ술 후 5년 이상 경과하여 지금은 건강을 회복한 상태라고해요.
그룹 부활이 따로 있으니까 부활한거 아니냐고...ㅋㅋ
절제한 위의 역할을 소장이 대신한다고해요.
정말 부활한거라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늘 첫사랑을 언급해왔는데
짝사랑만 해오던 김태원의 첫사랑은 고교시절
주위의 반대로 두사람은 가출을 감행했고
동반자살까지 시도했었다고해요.
그이 후 연락 두절 된 첫사랑
1년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첫만남에서 프러포즈 하고 싶었었다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아내.
아내를 처음 만난 날짜와 장소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해요.
아내와 한창 연애 중이던 1987년~1992년
세상은 부활의 보컬 이승철만 기억해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힘들었었다고
세상에 인연은 따로있다고
환각 상태의 몽롱한 연인 모습에 대다수는 절망을 겪지만
환각에 취한 몽롱한 상태가 사색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고
좋아하면 그 사람의 좋은 모습만 보는 이치.
연애중에 연인이 2번이나 감옥을가고
정신병원까지 입원했지만
김태원에게 지친 것이 연애 7년 차즈음
자신이 아닌 김태원을 위해 떠났다고해요.
하지만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아내
평생 곁을 지키겠노라고 결심했다고해요.
양쪽 집안 모두 실향민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겨우 허락을 받아\
1993년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지만
5년간 아이 소식은 없었다고해요.
생후 8개월 즈음 엄마 소리도 못했던 아이
이상 소견들을까 봐 병원에도 가지 못했다고해요.
조금 더딘 아이로만 알았던 부부
2006년엔 공연장에 딸만 데리고왔었다고
2011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아들의 사연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발달장애 아동은 부모가 죄의식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부모는 자책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해요.
부모의 태도와 태교는 자녀 발달장애와 아무 상관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발달장애 원인을
본인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고
부모의 큰 즐거움은 아이가 자라는 못브을 보는것
아이와 감정을 나눌수 없는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
장애를 인지하고 극볼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유독 딸을 예뻐한 김태원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조차 꺼렸다고\
아들과 동행하면 동정 어린 시선이 견딜수 없었다고해요.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가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이상하게 여긴다고
사경은 고개가 한쪽으로 꼬여서 턱 끝이 다른 쪽으로 향하게 되는 이상 상태로
그 어린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전전했는데
아이때문에 불행을 느꼈었다고해요.
지금은 무지 좋아졌다고하네요
하지만 위기가 닥칠수록 더욱 강해지는 엄마는
아들의 병을 불행으로 여기는 김태원에게 충격을 받아
수많은 시련을 묵묵히 버텨줬지만
남편이 상처받을까봐 미처 편지를 전하지 못하고
밀려드는 쓸쓸함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을 정도였고
가족을 떠나보낸 후 또 하나의 명곡을 만든 김태원
김태원에게 어느 때보다 힘들었떤 시기로
가족들이 떠난 뒤 좀처럼 곡 작업을 할수 없었다고해요.
하지만 가족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악상으로 떠올라
김태원의 인생에 부활을 가져다준
네버엔딩스토리!!
달콤한 세레나데인 줄만 알았던 네버엔딩스토리
가족에 대한 김태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곡으로
이후 가족들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해요.
결국 같이 살면서 힘든 것보다
떨어져서 그리워하는 쪽을 선택해
비교적 한국과 가까운 필리핀을 보금자리로 정하고
아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해요.
떨어져 지내는 것이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일수도 있고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막기 위해 혼자 지내는 것을 선택한 것은
일반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떨어져 사는 것은 바람직하진 않지만
가사와 육아를 책임져야 했던 김태원의 아내
아내. 엄마. 여자로서 모든 것이 소진될 정도로 힘들었을 상황
가정이 깨지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 떨어져 사는 것을 결정
숱한 어려움을 겪으며 두터운 신뢰와 사랑을 다져온 두 사람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잇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아이를 자신에게 맞추려고 할 때는 그야말로 불행의 극치
40세가 됐을 때 4세 정도의 수준만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자신만의 느린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아이
필리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엄마 없이는 아빠와 단둘이 있지 못했던 아들이
이제는 아빠 무릎에서 잠을 청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하네요.
발군의 노래 실력까지 겸비했다고해요.
평소 자선활동과 기부에 관심을 가져와
악기 제조회사를 창업하여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중이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해요!
<출처:MBN 아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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