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한국사 131화. 프로야구는 어떻게 천만 관중을 사로잡았나. 야구의 시작
선선한 가을에 더욱 뜨거워지는 스포츠인 야구.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야구를 향한 관심.
잊을 수 없는, 놓칠 수 없는 한국 야구의 장면들.
가을 야구는 잠시 제쳐두고 떠나는 오늘의 여행.
1982년 3월 27일 첫 출범 이후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한 프로야구.
2024년 9월, 프로야구 출범, 42년 만에 최초로, 천만 관중을 돌파했죠.
요즘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죠.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
한국 야구의 모든 것. 대한민국 야구의 시작부터 지금의 야구에 이르기까지.
야구의 모든 역사!!
다른 스포츠와 다른 야구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인생에서 우리는 자주 야구와 비교하잖아요.
야구처럼 실패를 많이 해도 박수받는 스포츠가 없다고. 야구에서 3할 타자는 잘 치는 타자로 평가하죠.
10번중 3번만 쳤는데도 칭찬 받는 것.
수많은 실패 속에 의미를 찾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죠.
인생은 9회말 2아웃부터!
야구는 타임아웃이 없죠. 미국 야구선수 요기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라고 했다고 하죠.
반면 잘 맞은 타구가 아웃될 수도 있고, 언제든지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는 야구와 인생.
여러분이 생각하는 야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야구가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스포츠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야구가 알려졌을 땐 완전히 다른 분위기 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처음 알려진 건 19세기 말입니다.
당시엔 돼지 오줌보를 공으로 만들어 즐겼던 축구.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야구라는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전문 기자, 이길용 기자가 기록한 조선 야구사 기사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야구의 종주국이 어디라고 나와있나요?
한국 야구의 포문을 연 필립 질레트의 YMCA 야구단.
그 당시에는 야구라고 불리지 않았습니다.
서양 공치기. 또는 배쓰볼.
야구!
들판에서 즐기는 공놀이.
조선보다 먼저 야구를 도입한 일본에서 만든 용어입니다.
반면 조선에서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920년대 이후입니다.
1920년대 조선의 엘리트들 사이에 야구가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야구때문에 조선인이 들썩이게 되는 역대급 사건이 벌어집니다.
조선인 선수로만 팀을 꾸린 휘문고보.
조선인 학교 최초로 고시엔 대회 본선에 진출합니다.
고시엔 대회는 아사히 신문에서 주최하는 일본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입니다.
조선 야구의 명예를 드높였다는 평가는 받은 휘문고보.
당시 휘문고보뿐 아니라 일제가 운영한 공립학교인 경성고보, 평양고보, 대구고보, 광주고보등, 당시 대부분의 공립학교에는 야구부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일제가 공립학교에 야구부를 만든 또 이유는?
야구를 이용해서 조선의 엘리트들을 일본에 충성하도록 키워내려 한 것.
일제의 계획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을까?
하지만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기는 어려웠던 야구.
야구는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잖아요.
도련님의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일본인의 스포츠로 인식된 야구.
조선의 학교보다 월등히 많은 지원을 받고 있던 일본 학교들.
휘문고는 어떻게 일본인 학교들을 이길 수 있었던 걸까?
다른조선 학교의 야구부와는 다르게 운영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던 휘문고.
바로 휘문고의 설립자가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휘였습니다 .
일본인의 스포츠이자 엘리트 스포츠로 인식되었던 야구.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야구 역사를 쓴 것, 광복 이후부터였습니다 .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